성장이 결여된 공무직의 현실, 그리고 채용 방식
카테고리 없음 2022. 3. 14. 21:59이전 회사는 공공기관이었다. 그곳에서 전산 분야의 공무직 직원으로 근무를 했었다. 가끔 다른 사람들은 '신의 직장'을 왜 그만뒀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근데 이건 정말 공무직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공무직은 철밥통이 아니다. 사기업과 비교했을 때 해고될 일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공무직도 엄연한 '근로자'이기 때문에 회사의 내외부적인 환경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 그리고 공무원의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비록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지언정 경제적으로는 노후 준비를 별도로 해야 한다. 또한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선택적 복지 혜택이나 수당 역시 부족하기 때문에 늘 돈에 굶주려 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공무직 직원은 미래가 없다. 지금 정부가 들어오고 난 후 공무직 선발이 극대화 되면서 많은 청년들이 공무직 직원으로 취업을 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취업률이 오르고 청년들은 청년대로 취업을 했으니 상부상조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정부는 청년들의 미래를 팔아 취업률을 올린 것이나 다름 없다.
공무원(공공기관의 정규직 포함)의 급여는 매년 물가 상승률에 따라 급여가 인상되거나 동결되곤 한다. 그리고 공무직의 급여는 보통 공무원 급여표를 따라 공무원 급여의 90%로 책정되어 지급된다. 그리고 그 뿐이다. 공무원은 급여에 대해 협상하지 않는다. 이미 짜여진 급여표를 따를 것을 임용 당시에 약속을 하기 때문에 급여에 대한 협상의 기회가 없다. 공무직 역시 공무원 급여표를 따라가니 급여에 대한 협상의 기회는 없다. 근데 나라 경제가 어려우면 종종 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급여 상승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급여가 사실상 마이너스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 지 모르겠으면 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
공무직으로 근무할 때 급여가 1천만원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매년 2% 물가 상승률을 적용하였을 때 얼마나 걸리는지 대략적으로 계산해 본 적이 있다. 당연히 복리가 적용될테니 1천만원 올라가는 게 오래 걸리지는 않겠다 싶었지만, 막상 계산을 해보니 15년이나 걸렸다. 그나마 전산직이기 때문에 다른 직렬의 공무직 직원들보다 급여가 좀더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더 비참한 건, 이때 적용한 이 2%조차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처럼 연금 보장이 되지 않으니, 부족한 급여를 쪼개 노후 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다 하더라도 한 국가의 평균적인 인플레이션은 2% 내외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비록 2% 급여가 인상되었다 하더라도 실질 임금은 동결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한다. 즉, 공무직의 급여는 시간이 지나도 오르지 않으며, 은퇴할 때까지 처음 계약할 때 적었던 그 급여를 받는 것이다. 내가 20년 넘게 회사를 위해 뼈빠지게 일해도 내 급여는 한 푼도 오르지 않고, 심지어 가끔은 줄어든다고 상상해보면 정말이지 너무나도 비참하다. 여기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올라갈 세금까지 고려를 한다면...?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바로 결심했다. 퇴사해야지.
공무직 직원은 본인의 기술을 성장시키기 어렵다. 디자인, 개발, 공사 등등. 죄다 외주다. 하다못해 탕비실에 있는 커피포트 조차도 관리를 외주업체에게 맡긴다. 한편으로는 당연하다. 그렇게 외주를 맡기면 돈이 여러 기업체로 뿌려질 것이고, 덕분에 나라에 돈이 흘러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을테니까. 이처럼 외주업체에서 일을 다 해주다 보니 본인이 직접 기술을 이용하여 뭔가를 만들거나 생산하는 일 따윈 거의 하지 않을 뿐더러 할 필요도 없다. 했다간 가끔 왜 그걸 네가 하고 있냐고 욕을 들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일하면서 어이없이 욕을 들은 적이 많다. 젠장. 편하고 좋아 보이는가? 그러나 그 편안함이 나중에는 이직의 문을 좁혀 결국에는 자기 목을 조르게 될 것이다. 만약 다니던 회사에 실망하여 사기업으로 이직이 하고 싶다면? 뻔하다. 기술을 연마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경쟁자들에게 밀릴 것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지금 있는 곳이랑 비슷한 다른 공공기관으로 지원을 하게 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공공기관의 채용 경쟁률은 높다보니 합격하기 쉽지 않다. 이것이 비단 기술직에 해당되는 것만이 아니다. 공무직으로 근무 당시, 행정직, 기술직, 전산직 등 상관없이 주변의 거의 모든 직원들 상황이 이랬다. 거의 모두가 뒤에서는 다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경력을 인정받아 이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혹시나 지금 공무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감히 얼른 탈출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막상 탈출하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공무직이 받는 복지 혜택 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동일한 수준의 복지를 제공해주는 다른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조차도 이직을 했지만, 이전 회사의 복지가 가끔씩 그리운 때가 종종 있을 정도니까. 한편으로는 공무직으로 근무를 하면서 쥐꼬리만한 그 복지 포인트는 도대체 왜 주는건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줄거면 공무원처럼 좀더 거창하게 해줄 것이지, 옷 몇 벌 사면 없어지는 쪼잔한 복지 포인트를 대체 왜 주는 걸까? 그래서 나름 내린 결론은 결국은 공무직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개를 훈련시킬 때는 주는 먹이처럼. 아마 대부분이 그 금액의 적음을 욕하기 보다는 '주니까 써야지'하며 기분 좋게 소비할 테니까. (혹시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하는 애긴데, 공무원은 복지 포인트가 2,000(200만원)이다. 공무직과는 5배 차이)
그래도 공무직이 생겼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난 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취업문이 좁디 좁은 인문 계열의 사람들에게 공무직은 어쩌면 마른 하늘에 단비 같은 일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공무직이라는 일자리 자체의 질은 아주 형편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국가 차원에서 주도한 일자리 정책이 어떻게 이처럼 경제력과 능력을 발전시킬 수 없는, 성장이 결여된 일자리를 권장할 수가 있는지 너무나도 괘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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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취업을 준비하던 2017년도에는 나도 내가 공무직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사업직으로 근무하던 와중 현 정부가 들어서 공무직 전환을 하기 위해 계획에도 없던 NCS를 공부해야 했던 억울한 과거가 떠올라 몇 자 끄적여봤다. 그때 나는 개발자의 길을 닦아가고 있는 중이었고, 어쨌든 이직한 회사에 적어도 2년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므로, 취업한 직장을 당장 떠날 생각이 없었다. 당시에는 공공기관에서는 무기계약직이 공무직을 대신하고 있었고, 개인이 가진 경력과 경험, 기술을 어필하면 어렵지 않게 직을 전환할 수 있었다. 과거에 내가 근무했던 곳은 비록 외주업체를 통해 서비스가 유지관리되고 있긴 하였지만, 시스템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내부 인력에 의한 유지관리 및 신규 서비스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사업을 확장하고 서비스를 원활하게 유지함에 있어 그러한 채용 방식은 기술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나름 융통성있고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서고 기관의 종류와 규모, 직무에 상관없이 모든 공공기관이 일괄적으로 1차 관문에서 NCS를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중요한 기술적 역량이 등한시 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는 정말 거짓말같이 실무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들만 채용되었다.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신입 직원들은 전무후무 했으며, 배경지식이 없어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유지관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NCS 시험도 잘 보고 기술적 역량도 갖춘 사람을 뽑을 의도로 채용 방식을 바꾼 것이겠지만, 보통 기술적 역량이 충분한 사람은 NCS 시험을 잘 못보고, NCS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은 기술적 역량이 부족하다. 만약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눈치를 챘다면, 기술적 역량을 일차적으로 평가해야 할텐데, 버러지 같은 채용 시스템은 직무를 막론하고 NCS부터 평가하고 있다. 딱 책상머리에서 나온 '탁상공론 채용 정책'인 셈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전의 회사에서는 지금도 제대로 된 사람을 못 뽑고 있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정부에서 모든 기관에 동일한 채용 방식을 적용하면서, 직원 채용의 자율성과 융통성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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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인구 감소와 함께 노동력 역시 줄어들고 있으며, 고령화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복지에 대한 요구와 필요성은 더욱더 커져만 갈 것이고, 그와 관련된 사업들 대부분은 수익 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들은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공공기관들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할텐데, 워낙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업이 필요하다 보니 그 일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직원들에게서 요구되는 능력이나 역량, 수준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공무직 일자리 질이 형편없고 모든 곳에 천편일률적인 채용 방식을 적용한다면 국가도 국민도 만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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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1년에 쓰여졌습니다.